-태국전 원정 완승으로 가뭄에 단비, 잔불 끄기는 다음 감독이…

이번 태국 원정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라’라고 한다면 손흥민이 추가 골을 넣고 이강인을 끌어안는 장면이 될 것이다. 손흥민-이강인의 포옹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승리 이상을 뛰어넘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표팀 공격의 주포 두 명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날 경기에서 이강인의 장점인 창의적인 패스는 살아있었고 그것을 받은 손흥민은 상대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각도가 거의 안 나오는 곳에서 슛을...[본문 중에서]
이번 태국 원정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라’라고 한다면 손흥민이 추가 골을 넣고 이강인을 끌어안는 장면이 될 것이다. 손흥민-이강인의 포옹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승리 이상을 뛰어넘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표팀 공격의 주포 두 명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날 경기에서 이강인의 장점인 창의적인 패스는 살아있었고 그것을 받은 손흥민은 상대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각도가 거의 안 나오는 곳에서 슛을...[본문 중에서]

[뉴스워커_스포츠 분석] 정말 오랜만에 가뭄에 단비 같은 승리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26,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4차전 태국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완승했다. 이날 한국은 전반 19분 이재성의 선취골, 후반 54분 이강인의 도움으로 손흥민이 추가 골, 후반 82분 김민재의 도움으로 박진섭의 A매치 데뷔골을 넣음으로써 골 잔치를 벌였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후 7경기 만에 2점 차 이상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무실점 승리는 16일 아시안컵 직전에 열렸던 이라크와의 친선 경기 이후 8경기 만이었다. 이번 경기를 통해 지난 아시안컵 이후 좀처럼 잡지 못할 것 같은 대표팀의 큰불은 어느 정도 진화된 듯 보인다.


분위기 반전은 일단 성공, 거의 맨몸으로 불 끈 황선홍호


지난 21일 태국과의 예선 3차전까지만 해도 기대 반, 우려 반의 분위기 속에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 많았다. 태국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대표팀이 소위 잘하는 선수들을 모아 놓기만 한 오합지졸 백화점이었기 때문이다. 전임 감독 클린스만 취임 이후 서서히 망가져 간 대표팀의 조직력이 좀처럼 살아나지를 않았다. 카타르 아시안컵을 거치면서 꾸역꾸역 승리는 했지만, 분위기는 매번 참담했고 어쨌든 이기긴했으니 지켜보는 팬들도 대놓고 쓴소리하기 어려웠다. 이후 클린스만 경질’, ‘탁구 게이트’, ‘카드 게이트등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대표팀의 분위기와 팬들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나와 관심이 같은 사람이 본 뉴스

황선홍 감독이 태국전 한정 임시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는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기 어려웠다. 문제가 한두 개여야 큰불이라도 잡아볼 텐데 무얼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227일 선임되고부터 태국전까지는 고작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해외파들은 모두 나가 있고 K리그는 31일에 개막했다. 올림픽 대표팀의 본선 진출을 위한 중요한 경기들도 연달아 예정되어 있었다. 3월에 있을 2차례의 태국전이 끝나면 황 감독은 곧바로 올림픽 대표팀에 집중해야 한다.

태국전 홈경기 결과는 참담했다. 대표팀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황 감독을 비난하기는 힘들었다. ‘박항서가 대신했으면 어땠나?’ 하는 의견도 많았다. 사실상 분위기 반전은 힘들어 보였고 그렇게 황선홍호의 짧은 여정이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러나 이번 원정 완승으로 인해 더 이상 불이 번지는 것은 막은듯하다. 아무런 도움도, 도구도 없이 맨몸으로 불을 막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박진섭 데뷔골의 의미, 조규성, 주민규도 좋은 모습 보여


하락세를 막은 것과 동시에, 이 승리가 의미 있는 것은 대표팀에 새로 합류했거나 그동안 기회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우선 박진섭은 실업팀으로부터 시작해 국가대표까지 달게 된, 매우 극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선수이다.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등의 멀티 능력이 인상적이어서 클린스만호에서 대표팀에 승선은 했지만, 클린스만은 박진섭보다는 정승현과 박용우 등을 더 선호했다. 박진섭은 출전할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원정에서 후반전에 백승호와 교체되었고 결국 A매치 데뷔 6경기 만에 첫 골을 기록했다.

조규성과 주민규 또한 나쁘지 않았다. 지난 아시안컵 내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조규성은 이날 원톱으로 선발 투입되었다. 이재성이 2선 라인에서 잘 버텨주었고 김문환이 우측 풀백으로 굉장히 열심히 뛰어주면서 전반적으로 패스들이 살아났다. 조규성은 공중전으로 계속 우위를 점하며 태국 수비를 소모하게 했고 2선 라인들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규성은 이재성의 선제골에 기여했다. 조규성과 교체 투입된 주민규도 비록 1:1 찬스 미스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태국 수비수 압박을 열심히 해줬고 이강인과 손흥민의 공간을 열어줌으로써 하프를 장악하는 데 이바지했다.


진짜로 운동장에서 풀었다손흥민-이강인 포옹하는 모습 찍어낸 것. 최근 들어 가장 큰 수확


이번 태국 원정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라라고 한다면 손흥민이 추가 골을 넣고 이강인을 끌어안는 장면이 될 것이다. 손흥민-이강인의 포옹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승리 이상을 뛰어넘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표팀 공격의 주포 두 명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날 경기에서 이강인의 장점인 창의적인 패스는 살아있었고 그것을 받은 손흥민은 상대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각도가 거의 안 나오는 곳에서 슛을 성공시켰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 추가 골은 이 둘이 왜 월드클래스이고 대표팀에서 뺄 수 없는 선수인지, 그리고 이 둘이 케미가 맞았을 때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탁구 게이트손흥민의 손가락 붕대’, ‘이강인의 영국행’, ‘4강전 노 패스 논란’, ‘이강인 대표팀 퇴출 여론등을 거치면서 온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 이 둘의 불화설에 큰 반전을 줄 수 있는 소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황 감독이 태국전 단 2경기를 지휘하는 것을 고려하면 곪을 대로 곪다가 터진 두 선수의 일에 대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태국전에 임하기 전 황 감독은 이강인의 대표팀 선발 논란에 대해 운동장 일은 운동장서 풀어야라며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의도했던 사진을 만들어냈다. 만약 이 사진이 이번 경기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대표팀의 중요한 자원인 손흥민은 자진 하차, 이강인은 다음에 다시 출전할 기회를 잡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황선홍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잔 불씨. 도대체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끌 것인가?


그러나 좋아하기는 아직 이르다. 맨몸으로 불 끄러 온 황 감독이었지만, 대표팀의 재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는 불길이 더 번지지 못하도록 적당히 막아놓고 가버렸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다음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대표팀의 다음 일정은 66일 싱가포르, 611일 중국과의 예선전이 남아있다. 2개월 좀 더 남은 이 기간에 한국은 새 대표팀에 알맞은 감독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신임 감독이 대표팀을 파악하고 준비하려는 기간을 주려면 적어도 5월이 오기 전에는 밑그림을 그려놔야 한다. 이번 황선홍 선임이야 워낙 급했던 점, 황 감독이 이미 올림픽 대표를 맡고 있었던 점, K리그 클럽을 지휘해 본 경험이 있다는 점으로 인해 특히 국내파 선수기용이 어느 정도 적중한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실제로 황 감독의 전략과 전술도 벤투호, 클린스만호를 거치면서 정립되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만약 여기서 큰 변화를 주려면 새로운 감독을 뽑는 절차와 철학, 선수기용 등을 빠르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운영에 대한 논란이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태국전 보이콧 논란을 겪었듯이 클린스만 선임 이후 쌓여온 불신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렵다. 특히 정몽규 회장이 대표팀 관련 업무와 감독 선임 절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차후 행방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을 할지 팬들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 세대교체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손흥민 등 주력 선수들이 은근슬쩍 은퇴 의향을 밝혀왔고 김영권, 주민규 등의 선수들은 이미 나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2년 뒤에 열리는 월드컵을 고려하면 이 선수들의 대체 자원도 고려해야 한다. 해외파로 이미 인지도가 있는 선수들 외에도 새로운 대표팀 전술에 맞는 후보들을 K리그 내에서 꾸준히 발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현재 황선홍호에서 두각을 보인 선수들이 다음 감독 체제에서도 함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태국 홈경기 무승부가 남은 예선전 일정에 주는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호주는 4차전에서 레바논을 5-0으로 대파했다. 다행히 이번 원정 승리로 인해 한국의 FIFA 랭킹 포인트는 1564, 3포트 경쟁 상대인 호주는 1563.93점으로 0.07점 차이로 우리가 간신히 아시아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태국(101)의 랭킹이 호주가 이긴 레바논(115)보다 높으므로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랭킹 점수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한국과 호주가 남은 경기에 모두 승리한다면 한국은 3포트로 진출, 3차 예선전에서 강팀인 일본과 이란, 호주를 모두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경기라도 무승부 이하의 결과가 나오는 날에는 여지없이 4포트로 추락, 좋은 조 편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호주의 남은 경기가 하위권 방글라데시(183)와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97)임을 감안하면 이변이 생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은 중국을 조심해야 한다.


이제 겨우 태국 한번 이겨놓고 좋아하긴 이르다


태국 원정의 통쾌한 승리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 몇몇 사람들은 체면을 살렸다. 축구공은 둥글기에 태국을 상대로 홈경기에서 비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 전력으로는 우리가 이길 확률이 높은 팀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8경기 만에 이제 겨우 승리다운 승리를 얻었다. 태국보다 약팀인 말레이시아에도 쩔쩔매던 한국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이들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이 남아있다. 이번 결과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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