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국제정세] 화웨이 사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해 본격 제재를 가하자 이에 동참하는 나라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거래 제한 조치에 모든 국가가 협력하기를 바라는 미국의 요구에 따르는 것인데, 한국으로서는 난처한 싱황에 놓이게 됐다. 미국의 요구에 따르자니 사드 문제를 겪은 바 있는 우리로서는 중국과의 거래를 무조건 끊을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 대만․영국․일본 등 줄줄이 탈(脫) 화웨이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품 수입금지 조치가 갈수록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국, 일본, 대만이 동참하기 시작한 것인데, 먼저 영국의 세계적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은 22일(이하 현지시간) 화웨이와 모든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영국은 당초 미국이 주도하는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하지 않고 화웨이가 영국의 5G 망 구축 사업을 하도록 허락했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화웨이 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했음에도 영국은 화웨이에 대한 결정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제레미 라이트 영국 문화·미디어 장관은 16일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미국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듯 영국은 영국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며 “화웨이와 관련된 정책은 영국의 규정과 규칙에 의거해 결정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밝혔을까. 영국 Arm의 반도체 설계가 미국의 원천 기술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미국 상무부의 거래 제한 조치를 받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Arm은 네크워크 장비,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에 사용하는 기린 칩셋의 핵심 코어(중앙처리장치)를 위해 미국의 반도체 업체로부터 지식재산권을 사들여 칩 설계에 응용하고 있다. 그런데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자체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가 바로 Arm의 반도체 설계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는 화웨이 제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내리면서 미국 부품이나 기술을 25% 이상 사용한 기업들에게도 제재를 적용토록 조치했다. 이 상황에서 Arm이 화웨이와 계속 거래할 경우 미국 정부에 의해 거래제한기업으로 지정될 수 있고 미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을 수도 있다.

화웨이 입장에서는 반도체 뿐만 아니라 고가 스마트폰에 Arm의 그래픽코어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Arm의 거래 중단 선언은 뼈아픈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영국의 이동 통신사 EE는 화웨이의 5G폰 ‘메이트20X' 출시를 연기했다. EE의 최고 경영자(CEO) 마크 알레라는 “고객을 안심시킬만한 정보와 신뢰, 정기적 보안이 확보될 때까지 화웨이 5G폰 출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EE는 앞으로 화웨이 통신장비도 단계적으로 제외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며, 영국의 이동 통신 사업자이면서 매출액상으로 전세계 2위의 이동 통신 사업자인 보다폰도 화웨이의 5G 사전 주문을 중단한다는 입장이다.

대만, 일본 이동통신사들도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를 무제한 연기했다. 23일 대만언론에 따르면 중화텔레콤, 타이완모바일, 파이스톤, 아시아퍼시픽텔레콤 등 대만 이통사들이 화웨이의 신규 스마트폰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미국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화웨이 스마트폰 보안과 사후지원에 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일본의 2, 3위 이통통신사인 KDDI와 소프트뱅크는 이달 말 진행 예정이었던 화웨이 증가폰 ‘P30 라이트’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고, 지난 16일부터 화웨이 고가폰 ‘P30 프로’를 예약 판매 중이던 일본 1위 이동통신사 NTT도코모도 출시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이통사들의 이같은 결정은 미중 간 갈등으로 화웨이 스마트폰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의 도시바 그룹과 샤프 등은 화웨이에 제공 중인 전자부품들이 미국의 거래 금지 조치에 해당되는지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 사드 겪은 한국은 입장 난처

이렇게 각국들이 화웨이 장비 사용에 대해 검토 중인 가운데 한국은 난처한 상황이 됐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삼성은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메모리 반도체와 OLED 패널을,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와 낸드플래시를 공급하고 있고, LG유플러스는 LTE 도입 당시부터 화웨이 장비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반사 이익을 기대했던 한국으로서는 또 다른 문제를 맞은 셈이다.

미국은 한국 외교부를 상대로 화웨이 장비에 보안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꾸준히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지난 15일 미국이 발동한 화웨이 제품 수입 금지 조치에 동맹국들이 하나둘씩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고,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고 미국의 요구를 따르자니 사드 문제를 한바탕 겪은 바 있어 중국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에서는 화웨이 사태가 안보가 아닌 통상 이슈인데다 기업 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타 언론을 통해 “화웨이와의 거래 문제는 한․미․중 3국에 제한된 안보 이슈인 사드 사태와 다르기 때문에 미국 제안을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 거래 중단 요구에 호응하지 않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기준을 참고하고 그들과 연대해 신속하되 일관된 원칙을 유지하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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