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EU(유럽연합)에 에어버스 보조금을 거론하며 이에 상응하는 110억 달러 규모의 EU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EU와의 무역전쟁을 선포한 바 있는데, EU도 집행위원회에 미국과 무역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곧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국제정세] 미국과 중국이 이르면 5월 말 또는 6월 초에 무역협상 합의문에 서명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은 일본과도 무역협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9일 EU(유럽연합)에 에어버스 보조금을 거론하며 이에 상응하는 110억 달러 규모의 EU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EU와의 무역전쟁을 선포한 바 있는데, EU도 집행위원회에 미국과 무역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곧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캐나다 정부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보복관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미국발 무역분쟁이 다각도로 얽힌 모습이다.

◆ 미․일 무역협상, 쉽지는 않을 듯

미국과 일본은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무역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두 나라가 생각하는 협상 규모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물품에 대한 관세 철폐 및 인하에 한정하는 ‘물품교역협정(TAG·Trade Agreement on goods)’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미국은 투자 및 서비스 분야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일 무역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미국의 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미국의 대일본 무역적자는 676억 달러(약 76조원)에 이른다. 중국, 멕시코, 독일에 이어 4번째로 많은 규모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대일 무역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도 미국의 대일적자 무역의 약 80%는 자동차 무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본은 이번 협상을 ‘물품무역협상(TAG)’라고 부르며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인 자동차를 비롯 농산물 등의 관세 철폐 및 삭감을 중심으로 교섭 범위를 논의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자동차·농산물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환율 문제까지 포괄하는 ‘미일무역협정(UISJTA)’를 주장하면서 큰 이견차를 보였다. 이번 대일 무역협상에 나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는 “대일 무역적자 원인인 자동차 등 물품뿐만 아니라 금융서비스와 환율조항 등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자”고 요구한 것이다.

우선 자동차와 관련해 미국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차량 대수에 상한선을 정하는 규제를 밝히면서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일본 자동차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일본은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수입수량 제한이나 추가 관세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미국과 일본이 의견 차이를 보인 또 하나의 부분은 ‘환율조항’이다. 환율조항은 금융정책의 투명성과 설명책임을 강화하고 수출에 유리하도록 환율을 조작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환율 조항도 이번 협상 의제로 삼으려 하는 것이고, 일본은 지난 1985년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한 플라자 합의 이후 큰 경제적 충격을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환율 문제는 무역협상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상황을 두고 미․일 무역협상에 관심 있는 워싱턴의 소식통들은 “트럼프 정부가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환율 문제를 압박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추가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자동차와 환율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큰 반면 농산물과 관련해서는 협상이 비교적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EU와의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하면서 소고기, 돼지고지 및 농산품 등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 시장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졌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에 TPP의 관세율과 동등하거나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세 인하를 요구했고, 일본은 TPP 수준으로 최대한 해보겠다며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전자상거래(EC) 등 디지털 무역 부문의 협상도 시작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은 오는 26~27일 있을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협상 내용을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 EU도 미국과의 무역협상 채비

EU도 지난 15일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시작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최근 미국이 유럽항공기 제조회사인 에어버스에 대한 EU의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며 110억 달러 (약 12조5천억원) 규모의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자 EU도 이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무역 분쟁 조짐을 보였다.

사실 미국과 EU의 무역분쟁은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됐다. 미국이 EU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국가 안보’를 내세워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고 EU도 이에 맞서 청바지, 오토바이 등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뒤인 7월, 관세 감축에 대한 협상을 벌이기도 합의했지만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큰 진전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에어버스’ 문제가 불거지면서 EU주재 대사들은 EU집행위가 미국과 다시 무역협상을 시작하는 데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캐나다도 미국이 부과한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에 대해, 만일 이 조치가 철회되지 않으면 보복관세의 위력을 높이겠다며 대상 품목 조정에 나섰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상대로 다각적인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자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제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무역분쟁을 하나씩 풀어보겠다고 나선 것인데 이렇게 해서 미국이 과연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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